작성일 : 20-04-12 04:02
+61 [고난주간]토,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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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웹썸
조회 : 1,037  


●히11:17-19. 마27:45-46.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예수님의 생애 중 가장 큰 시험 2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40일금식했을때 사단의 시험이었고,

또하나는 겟세마네동산에서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시험의 과정들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 분명한 삶의목적과 분명한 십자가의 사명을 끝까지 이루셨던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브라함에게도 큰시험꺼리 2개가 있다면?

 부름받았을 때 본토 친척 고향을 버리고 가는 것이고,

 모리아산에 자식을 번제로 드리는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브라함은 하니님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흔들려도 넘어져도 또 일어나 툭툭 털고 약속 때문에 사명 때문에 이겨 나갔던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주간 마지막 날에 이 두 사건을 보면서

시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나 자신의 목적과 사명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속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나를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기를 바라시며,

이곳에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의 몫은 무엇인가를 

정말 믿음으로 고민하고 나아간다면 그 사람은 나이가 어리건, 나이가 많건,

시험이 시험이 시험꺼리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진보가되고, 주의나라와 의를 이루게 되는 나자신을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존 퀸시 아담은 말하기를 -모든 시험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시험은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한다. 

*마틴 루터는 나에게 닥쳐오는 시험과 시련은 나를 거룩하게 만든다.  

*프란시스 S.페넬롱은 시험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수 많은 믿음의 녹을 없애는 줄칼과도 같다.  

*F.C.리일은 모든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지이며 세상의 종말에 우리를 선하게 삼으려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올바로 세움 받도록 만들어주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다!!”

 

G이제 고난주간 마지막날 성도들에게는 시험이 더 기승을 부릴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마시고 “시험이왔니? 너를 통해 난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게 하는지 보여주마!!”하며 더 예배, 더 기도, 더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약1:2-4절.“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를 드린 구속의 사건을 생각하며. 고난주간 마지막 날을 보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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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s히11:17上.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시험을 받은것은 아버지로서 가장 혹독한 시험이었고, 그 인생가운데 가장 혹독한 시험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이방인들의 제사방법에나 볼 수 있었고, 한국의 전래동화에나 볼수 있었던 방법으로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요구하셨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쳤을때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22장12절 말씀에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6절“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아니하였은즉”

 

어쩔때는 우리가 믿는다고생각했던 믿음의 수준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할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게 하시기 위하여, 멈춰있지않고 전진학 하시기위하여, 

실패하지않고 참된 성공으로 나아가게 하기위해서 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은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금이야 옥이야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만큼 소중한 아들입니다.

어느날 집안에 아이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첩의 아들 이스마엘이 사라의 아들 이삭을 희롱하며 놀렸습니다. 

그때 이스마엘의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 & 이삭의 엄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쫓아가서 ‘저 여자를 제발 내 쫓아버리라고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자식문제 때문에 서로 마음이 붉혀질수 있겠더라구요. 그나마 믿음있는 사람은 뒤로 한보 물러나 크게볼줄알지만...믿음으로 장래의 약속과 기업을 보지 못한다면 이 또한 시험꺼리가 될 것입니다. 옛말에도 자식이 상전이란 말이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사랑해야함에도 그 자리를 자식한테 뺏기며 살아가는 부모들이 많은 시대가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니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니가 정말 니 자식보다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께서는 100세에 아들을 얻어 정말 귀하게 키웠는데 그 자식을 세상에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그를 죽여야 했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창22:1절“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당시 범죄형틀중에 가장 처참하고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중에 하나였습니다. 

IS의 전통적 사형방법은 돌로쳐서 죽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 형틀이 시작되었습니까?

그 기원은 페르시아인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들은 신이주신 신성한 땅에서 죄인들은 땅에 닫지않게 높이달아 죽이는데서부터 시작된것이었습니다.

이런 처형법이 페르시아에서부터 북아프리카,카르타고,로마로 전해졌고. 그당시 IS은 로마의 속국이었다보니 로마의십자가처형법이 적용된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게되면 금방죽지않기 때문에 2-3일정도 피말리는 고통. 뼈를 관통한 못에 지탱되어지다보니 근육이 가로틀처럼 꼬이고, 뼈에서 살속에서 피가 못끝으로 서서히 빠져나옵니다. 모든 수치를 보여준다고 옷을 다벗겨서 달고, 어떤 경우에는 십자가 앞에서 가족들을 하나씩 고문하기도 했다고합니다. 저주의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는 저 십자가에 내가 죽었어야하는데. 예수님께서 나대신 죽으셔서 구속하신 사건을 기억해야만합니다. 십자가는 악세사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찬양에도보면; 나를 위해 오신 주님. 나의 죄를 위하여서. 유대병정들에게. 잡히시던 그 날밤에. 아무런 말 도 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예수. 십자가를 지셨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시면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간고하게 기도하셨지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지만 그것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져야될 십자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로하여금 지게하신 사명의 십자가였기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인신번제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따라 이해되지않았지만 믿음으로 순종하며 3일길을 나아갔고, 그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고 하나뿐인 독생자를 제물로 바쳤던것이었습니다. 

 

===========

둘째, 그가 바쳐야하는 아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을 아들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주시마..민족을 형성하겠노라..약속하셨던 아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본문, 히11:17中~18에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시험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는데도 아들을 바칠 준비를 한 것입니다.

(18절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네게 약속한 후손은 이삭을 통해 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이 보통 아들입니까? 아니었습니다. 이삭을 통하여 약속을 성취해나가야할 아들이었습니다. 

후손을 잇기위하여 주신 하나밖에없는 아들이었습니다. 

더 보호해주시고 더 보살펴주셔야하는데 기업을 이어갈 이삭을 제물로 바칠 준비를 했다는것은 도대체 인간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상황입니다. 

아들이 몇 명이라도 되면 몰라도 약속을 이어갈 아들이 하나뿐인데 그를 칼로 각을 뜨고 내장을 꺼내 불사르며 번제로 드려야한다는 인간으로서 할짓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독생자를 바칠준비를 했다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잔인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이를 잔인하게 죽여야했습니다. 

복,후손,하늘의별과 바다의모래같은 후손의 약속, 열국의 아비가되리라하셨던 모든 축복이 다 모두다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일을 준비했다는 것은 이 모든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때문이었습니다.

 

욥은 고난받을 때 주신자도 하나님 취하신자도 하나님이라고 했고, 우리가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했습니다.

욥은 고난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끝은 항상 전화위복이 되는 복입니다.

갑절의 축복의 길이 될것입니다.

 

창세기22장을 보시면 청천벽력같은 말씀을듣고 다음날새벽에 일어났습니다. 

나귀에 나무를 싣고 불과 칼을 들고 간것입니다. 삼일길을 가는데 이삭이 하는말이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있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버지는 이삭을 줄로 묶었습니다. 아들 이삭은 늙은아버지에게 얌전한 어린양처럼 줄에 포박되어 제단위에 올려 칼을 들려 질때까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던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믿었기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됐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줄을 아노라”. 뒤편에 보니 수풀에 수양한마리가 걸려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던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여호와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마음껏 축복을 해주셨던것이었답니다.

 

===========

셋째,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얻은 것이었답니다. 죽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히11: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도 살려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하여 그 외 아들 독생자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던것입니다.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나의하나님나의하나님어찌하여나를버리시나이까

육체의 고통, 정신적고통속에 하나님까지 등을 돌려버리신 영적인 고통까지 더했으니

그 외로움과 상심속에서 주님은 홀로 그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롬4:16-25절을 보십시오.

(16)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에게 약속을 은혜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모세의 율법 아래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전부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17)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다” 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은 그가 믿은 하나님, 곧 죽은 사람도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18)아브라함은 소망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믿고 소망하였습니다. (19)아브라함은 백 살이나 되어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사라도 나이가 많아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약속을 굳게 믿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22)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23)“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24)그 말은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될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습니다. (25)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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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중앙장로교회 성도여러분

오늘은 고난주간 마지막날입니다.

고난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를 위해 고난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무슨 죄가 있어서 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지막날 하나님의 다시 살게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듯이 하나님은 여러분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일으켜 높이 세워주시되

갑절의 은혜 그 이상의 복과 영원한 복으로 여러분을 세워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개인기도가 끝나시면 주기도Lord's Prayer으로 마치시면 됩니다.

한 주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셔서 최후 승리를 얻은 여러분께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셨으니 주님의 부활에 참예 하시어 영광의 그날을 사모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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