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Before God as Children, Standing in God as Parents)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누군가의 부모로 살아갑니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사랑과 갈등, 회복과 상처를 경험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만나는 만남이 있다면 부모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만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없기에 부모님의 형상 곧 그 모습과 성향과 말투까지 닮아갑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자녀를 볼 때 자신의 닮은 점을 찾아보며 만족을 느끼고 혹은 나처럼 자라지는 말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저는 어릴적 저의 자존감이 낮아 있어서 현재, 우리 부부를 통하여 태어나는 아이는 나 같은 자를 닮지 말고 아내만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첫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정말 아내를 닮은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나도 좀 괜챦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둘째로 딸을 낳았더니 나를 닮은 아이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또 살다보니깐 겉모습은 엄마를 닮았는데 하는 행동과 눈빛은 나를 닮아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아빠를 닮았는데 하는 행동과 눈빛은 엄마를 닮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깊은 관계속에서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는 자녀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가정속에서 “관계”를 이루며 닮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전통만을 가지고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엡6:1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주안에서”라는 말을 넣음으로서 가정속에 “하나님의 질서”가 새롭게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서가 싫은 가정은 그냥, “자녀들은 ‘주안에서 빼고’ 그냥 자기 부모를 순종하라”고 해석함으로 살게 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나 개인만의 하나님아니시고, 가정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속에 하나님은 임재하시며 통치하시고 인도해 나가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 내 마음에만 오시고 가정에는 오시지 말아주세요!; 하나님! 내 마음에만 오시고 내 삶터에는 오지 말아주세요! 그러다가 이젠 내 마음에도 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고 폐쇄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가정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ㅡ 아니겠습니까!
부모 공경은 단순한 예절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이며,
신앙은 단지 예배당 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가정을 통해 전수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려는 마음이 불편하면 그 부모는 하나님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기가 불편하면 그 자녀는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대한 부모가 자녀를 향한, 자녀가 부모를 향한 도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중앙장로교회 다니는 가정은 모두가 “주안에서”라는 하나님의 질서가 불편하지 않고, 즐거운 가정을 하나님안에서 만들어가고, 누리는 가정되기를 바라며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순종과 공경 ㅡ 자녀들은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엡6:1-3)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래도 어른들이 잘해야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비는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고, 아무리 가벼운 눈송이나, 솜털도 결국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자연이치이듯이, 우리 부모들이 먼저 말과 행동으로 잘해야합니다. *잘한다는 말은 참 쉬운데 어렵습니다. 무엇이 잘하는 것인가?
1) 어른들이 말씀에 신실하게 사는 모습이 잘하는 것입니다. 마25:21절에 종들이 주인의 말의 뜻을 간파하여 순종과 충성으로 살나내는 것이 잘한것이었듯이, 어른들은 더높은 어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간파하여 신실하게 순종충성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2) 어른들이 먼저 예수님의 섬김처럼 본을 보일 때 잘하는 것입니다. 요13:14-15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표본을 보여주시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은 것이니 이 표본을 따라 너희도 서로 행하라고 하심처럼, 어른은 자녀들에게 인생표본이 될 사건을 보여주시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3)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을 보일 때 잘하는 것입니다. 시128:1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을 보여주어야 잘하는 것입니다.
말씀 곧 성경말씀은 백번천번들어도 지겹지가 않아요! 그러나 사람의 소리는 한번두번 듣다가 세번째 들으면 지겹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그만하라’ 속에서는 소리칩니다. 그런데 눈치도 없는 아버지는 또 사람의 소리를 자꾸 발합니다. “나때에는 말이야…라떼에는 그러지 않았어”하며 라뗴를 자꾸말합니다”. 그때부터는 그동안 받은 아버지는 은혜는 다 살지고 마지막 은혜마저 다 쏟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된자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말씀을 늘 새롭게 받고 새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같은 말씀이래도 새롭게 영으로 영혼에게 전달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자녀들도 잘해야합니다. “1-2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말씀 또한 부모님의 신앙처럼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가 전하는 말씀을 듣기 싫다고 귀를 막아버리는 인생이 되지 않기위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말씀을 날마다 듣고 그 말씀안에서 자기를 늘 새롭게 하려는 동기부여가 없으면, 부모를 통하여 주시는 지혜와 지식과 경륜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도 “주안에서”라는 위로부터주신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를 통하여 부딛힘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육신의 눈으로) 꼴도 보기 싫은 부모, 불쌍해 보이기만하는 부모, 듣기 싫은 부모가 “주안에서” 존경스러운 부모, 정말로 나를 위해 말씀하시는 부모, 이제서야 들리는 부모의 말속에서의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경륜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어른들에게는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경험으로 축척된 지식이 있습니다. 살아온 경륜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대처하는 능력과 사람을 볼줄아는 통찰력과 원만한 인간관계와 평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며, 젊은 세대가 배우고 존중해야할 깊은 지혜의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어른이 다 그런 것은 아지니만 ‘어른’하면 그런 지혜의 보물창고는 다 가지신 분들이란 것입니다.
1)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권을 세워갈 때 그는 어른들의 지혜를 듣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소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유화정책을 쓰지않고, 전갈정책을 강행하다가 나라가 완전히 쪼개지며 분립되어버린 사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왕상12장). 어른의 지혜는 참 노련합니다. 어른의 지혜를 듣는 것은 참 유익한 점이 많습니다.
2) 다윗도 한때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쫓겨날 때 살아나게된 원인이 있었다면 압살롬 곁에후새라는 지혜로운 어른을 정보원으로 숨겨 두었기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압살롬의 고문은 아히도벨이 최측근 고문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고 전술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후새를 압살롬 곁에 정보요원으로 두었기에 그도 또한 압살롬 곁에서 돕는척하면서 모든 정보를 다윗에게 흘려보냈던 어른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계획을 따라 다윗을 쫓아가 즉각 처단하려했던 계획을 멈추게한후 섣불리 쫓아가지 말고 온 이스라엘 군대를 소집하여 단번에 무찔러야한다고 하면서 시간을 벌인것입니다. 전체 군사들을 다 소집하는 시간을 이용해 다윗에게 정보를 흘려보내 더 멀리 도망치게 한것이었습니다. 그 또한 어른의 지혜는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다윗을 살리게되는 노련한 지혜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른들의 지혜는 놀라울만큼 노련합니다. 그러나 더 높은 노련함을 가진 어른이 있었으니 그는 어른 후새였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부모보다 자녀를 더 생각하고, 더 기도하고, 더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부모보다 더 어른 같은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보이고, 말씀에 신실한 모습을 보이는 부모라면 그 보모는 참 어른이되어 자녀들을 구원과 여생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분별하여 주안에 서기에 힘써야하며 참 어름의 본을 받아 말씀에 신실하고, 예수님의 본을 배워 기준을 삼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를 배워가야할 것입니다.
2. 거짓없는 믿음 ㅡ 자녀들은 부모의 거짓없는 믿음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딤후 1:5)
거짓없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가식없는 믿음, 위선없는 믿음, 가장하거나 연기로 꾸며감이 없는 믿음이란 문자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지켜봐왔던 디모데의 믿음은 겉치레적인 믿음이 아니라 진실하고 투명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거짓없는 신자는 디모데 이전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1)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도 탐욕과 유혹과 배신하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그의 정직함을 사람과 하나님앞에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2) 다니엘은 이럴적에도 신앙의 지조를 지켜 우상의 제물을 거절하며 하나님앞에서 기도로 진실한 믿음을 증명하며 살았습니다. 3)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많았음에도 자신은 솔직하게 그리스도의 신발을 들고 다니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며 자신을 그리스도 앞에 완전히 낮추고 그리스도만 드러나기를 고백하였습니다. 그것이 자신이었고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던 자였습니다. 4)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얼마든지 자신이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주의 계집종으로 낮추며 말씀대로 쓰임받겠다고 했습니다. 그외에도 디모데처럼 거짓없는 믿음으로 살았던 분들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거짓없는 믿음을 어디서부터 전수받았습니까?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친가쪽 즉, 아버지계열로는 신앙을 전수받지 못했지만, 외가쪽 곧, 어머니쪽 계열로 신앙을 전수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6장 1절에보면, 어머니는 유니게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헬라인 곧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니게 또한 자신의 어머니 로이스로부터 거짓없는 믿음을 계승받았음을 알 수있습니다. 디모데는 자신이 가진 거짓없는 믿음이 혈통적으로는 할머니와 어미로부터 전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로이스의 이름의 뜻은 “더 좋은” 이란 뜻이고, 어머니 유니게라는 이름의 뜻은 “선한 승리”라는 뜻입니다. 이름만으로도 디모데의 믿음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같습니다. 디모데의 거짓없는 믿음은 할머니의 믿음보다 더 좋은 믿음으로, 어머니의 선한 승리처럼 열매맺으며 자라게 되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바울의 마음에 들게되어 바울의 가장 사랑받는 영적 아들로 성장하며 교회와 선교의 후계자로 세워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록을 통하여 자녀교육의 장소는 교회도 맞지만, 가정이 기초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교육 열정은 다음세대를 세워가게 될 것이며, 그 도구는 성경과 성경에서 주시는 말씀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어머니의 진실한 기도라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전해주는 성경말씀과 기도는 자녀들 마음속에 평생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이 하나님으로 부여받은지혜는 능히 우리를 유익하게 할 것이며 더욱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과 그 말씀안에서 주시는 영적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귀를 막지말고, 마음을 닫지말고 부모님의 지혜의 음성을 들으셔서 선한 열매맺는 자녀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가정을 통하여 신앙을 전하시고,
부모를 통해 사랑을 가르치시며,
자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십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의 작은 모형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자녀로서 주님 앞에 순종하고,
부모로서 주님 안에서 양육하며,
가정 전체가 하나님의 질서 안에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의 가정을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주시고,
부모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인격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더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