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ke 22:39-46 Following the Prayerful Example of Jesus
성경학자요 교사요 목사인 ‘조이스 마이너(Joyce Meyer)’는 그의 10살인 손녀의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너무 바빠서 하나님과 보낼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린 것입니다. 그래서 손녀에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첫 5분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바쁜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삶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5분이 모이면 10일이면 50분이되고, 100일이되면 500분이되고, 365일이되면 1825분을 기도하게 됩니다. 아무리 내 일이 바쁘고, 내가 피곤해도 하나님을 내 스케줄에 끼어넣는 습관을 키우지 말고, 나를 하나님의 스케줄에 맞추는 습관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습관은 예수님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좋은 습관은 십자가의 사역을 더욱 감당할 수 있게 하지만, 나쁜 습관은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면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아버지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평상시 예수님의 습관은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셨고, 밤이면 감람산 즉, 올리브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눅21:37). 매일 그렇게 사신 것은 아니지만 습관처럼 감람 서쪽 기슭에 기름짜는 기계가 있던 겟세마네 동산에 들러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가셨다고 했으니 기도의 동역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감람산은 교회입니다. 미국 살면서 직장-집 -& 교회 이 세 곳은 우리들에게 희망과 안식과 행복을 주는 곳입니다. 어느 한곳도 무시될 수 없지만 특별히 교회는 겟세마네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 하나님과 영적 사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수있는 있는 영향력을발휘하기위한 영적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 곳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 아지트에서 습관처럼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좇아,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기도하는 아지트를 만들어, 영적 충전소의 역할을 감당해주기를 바라며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기도의 습관 (39)
눅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어떤 어머니가 지혜자를 찾아가 “어떻게하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요?”했더니 지혜자가 하는 말이 ‘저 앞에 심어둔 나무들이 있는데 가서 차례대로 뽑아보세요?”. 어머니는 맨앞에있는 나무를 뽑았습니다. 쉽게 뽑혔습니다. 왜냐하면 몇 시간전에 심었던 나무였기때문입니다. 두번째 심겨진 나무를 붙잡고 뽑았는데 꽤 힘들게 뽑았습니다. 왜냐하면 심은지 1달이 지났기때문입니다. 그 다음 나무를 뽑으려는데 잘 뽑히지 않았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 흔들어 재끼면서 뽑았습니다. 왜냐하면 심은지 3달이 지났기때문입니다. 그 다음나무는 뽑으려는데 이미 기둥이 크고 손으로 잡기도 힘들정도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혀 뽑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심은지 벌써 3년이 넘었기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지혜자가 말했습니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려면 좋은 습관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릴적부터 좋은 신앙의 습관을 가졌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갔을때에도 그는 습관을 따라 실천했고, 습관을 따라 기도했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해 행하던 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습관은 좋은 습관입니다. 감사 기도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다니엘은 기도하다 들키면 사자굴에 들어가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기도의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창을 열어놓고 보란듯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 산 아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고 제자들도 좇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향한 기도의 습관을 좇아 자신들의 습관을 바꾸어 보려고 열심히 감람산에 기도하러 좇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육체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예수님을 좇아다니며, 밤에 예수님을 좇아 기도하려하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졸더라고 예수님을 끝까지 좇아 기도하러 다닌 것을 보면 이런 자들이 결국은 성령받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변화시킬 수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제2의 천성인 습관은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 했습니다. 몽테뉴는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습관을 가지셨습니다. 그 말의 뜻은 힘이들고 어려워도 기도하는 습관을 통하여 인간의 악한본성이 유혹하는 강력한 세력을 파괴시키는 더 강력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 버리신 것입니다.
2. 기도의 무릎 (40, 41)
눅22:40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5년전쯤이었을 것입니다. 강단 의자밑에는 기도할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놓은 기도방석이 있었습니다. 한 10년을 무릎으로 비벼대며 기도했더니 구멍이 났습니다. 그것을 아셨던 고, 박금숙권사님이 새로 방석을 만들어주셨는데 얼마나 질긴 천으로 만들어주셨던지, 손으로 비며보니깐 청바지보다 강한 천으로 만들어 주신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목회의 목표는 이 질긴 방석을 구멍내는 것이 남은 목회 목표를 가져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별명은 낙타무릎이었습니다. 낙타는 광야에서는 강자입니다. 그래서 눈썹이 길어 폭풍바람을 막아내고, 혹으로 갈증을 이겨내고, 무릎으로 주인의 말씀을 순종합니다. 야고보는 낙타무릎처럼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도했었으면 그가 다리를 빧빧하게 펴지를 못했는데, 초대교회사람들은 그를 낙타무릎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주인은 그 등에 물건을 실어야하기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아주 심한 폭풍바람이 불면 스스로 무릎을 꿇으며 이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중간 중간 쉬어갈 때 마다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짐을 내리기 위하여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기도의 서신입니다. “약1:5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시라; 약1:6 조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약4:2 너희가 얻지 못하는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약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그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릎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무릎은 사람을 순종하게 합니다. 무릎은 사람을 신뢰하게 합니다. 무릎이야 말로 용서가 무엇인지 깨닫게합니다. 사랑합게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합니다.
3.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기도 (42, 43)
눅22:42,43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님께서도 인성으로서 겪어야하실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유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도 신이니까 그렇게 하셨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과정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보실 때 인정받을 수 있는 기도가 되려면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자기 희생없이 기도하려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 뜻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무슨 내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내 뜻을 내려놓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이 받아야 할, “그 저주의 고통, 진노의 고통, 징벌의 고통”을 홀로 담당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없이 우린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연약한 육체의 힘을 천사가 내려와 도왔습니다. 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받은 영적 존재입니다. 마4:11절에도보면,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고 마귀의 궤계를 이겼을 때도 천사는 내려와 지친 예수님을 도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천사가 예수님의 신성보다 강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서 모든 것을 처리하실 수 있으셨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겪어야할 모든 고통을 다 짊어지시고 인생이 담당할 저주의 고통을 완수하셔야 하셨기때문입니다. 그럴때 천사는 그 사명을 완수할 수있도록 그저 땀딱아주는 역할만 한것이지, 천사가 예수님보다 위대하거나 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험난한 이민생활속에서 지치고 힘들고 혹은 마음의 눌림과 괴로움과 외로움 그리고 미래에 불확실한 삶속에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89장/세상모든 풍파너를 흔들어 약한마음 낙심하게 될때에, 세상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지고 나갈때,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 하리니 염려없이 앞만보고 나가라!/ 이 주간도 천사들이 여러분을 예수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힘을 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4.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 (44)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예수님의 기도를 단장의 기도(斷腸, Heartbreak) 라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원숭이 새끼를 사람들이 납치해갔더니 어미 원숭이가 따라오면서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 어미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다끊어져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려주시기위하여 자신의 모든 힘과 모든 신경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했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기도했었을까요! 그 기도는 바로 우리를 흑암에서 빛으로 구원하여내시기위한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자기백성을 위한 단장의 기도를 했고, 바울이 자기 동족구원을 위해 단장의 기도를 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시려고 단장의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출32:30-35; 롬9:3). 그래서 기도도 자기 희생이 있어야합니다. 힘쓰고, 더 간절하여, 땀이나고, 피나는 기도말입니다.
5.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
눅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눅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40절에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46절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되었습니다.
마지막 환난의 때에 잠들기 쉽습니다. 그렇게 당부하셨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 재판으로 넘겨지는 날, 깨어 기도하지 못하던 그들은 ‘깊은 시험과 좌절과 절망”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람산의 기도만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며 주님을 따를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의 습관- 기도의 무릎-아버지의 뜻- 그리고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며 땀과 피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도 일꾼되어 정신차려 주와함께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않기를 기도하게 계심을 믿습니다(눅22:32).
기도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기도의 습관으로 우리의 삶의 변화를 주시옵소서!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의 새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를 땀과 피흘리신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정신차려 기도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도와 주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하여 자신을 전부드려 저주와 징벌을 대신 받으신 우리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